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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독서정책 (독서율, 제도, 인프라)

by 김다2302 2025. 4. 25.

"독일 국기 아래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며 어우러진 장면을 담은 일러스트"

독일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체계적인 독서 정책과 문해력 교육 시스템을 갖춘 나라 중 하나입니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국민이라는 이미지를 넘어서, 정부 차원의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독서 진흥 정책, 교육과 연계된 문해력 향상 프로그램, 그리고 모든 시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서관 인프라가 결합된 독서문화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독일의 독서율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를 가능케 한 제도적 기반은 무엇인지, 그리고 독서 환경을 뒷받침하는 인프라가 어떤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독서율 현황: 독일인의 책 읽는 습관

독일은 OECD 국가 중에서도 독서율이 높은 편에 속합니다. 독일 통계청(Destatis)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독일인의 79%가 최근 1년 내 최소 1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고 응답했으며, 그 중 약 35%는 월평균 2권 이상의 책을 읽는 ‘열정적 독서자’로 분류되었습니다. 독일 사회에서는 독서가 교양의 상징일 뿐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주요 활동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특히 독일의 독서 습관은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형성됩니다. 유치원 단계부터 ‘그림책 읽기’ 활동을 일상화하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학교 도서관 이용 교육, 독서 일기 작성, 책 발표 수업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지게 됩니다. 독일 교육부는 “문해력은 모든 학문의 기초”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독서를 학습 능력의 기반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기반 덕분에 독일은 고연령층에서도 독서율이 높습니다. 60대 이상의 국민들 역시 공공도서관을 꾸준히 이용하며, 특히 자서전, 역사서, 문학작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입니다. 이처럼 독일에서는 독서가 나이와 관계없이 전 생애에 걸쳐 지속되는 문화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도적 지원: 독서를 위한 국가 정책과 교육 연계

독일의 독서 진흥 정책은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가 함께 추진하는 협업 구조 속에서 운영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정책은 연방 교육연구부(BMBF)의 ‘국가 문해력 전략(Nationale Leseoffensive)’입니다. 이 전략은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층의 문해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며, 학교, 도서관, 비영리 단체, 기업 등이 파트너로 참여합니다.

독일 교육제도의 특징은 독서를 단순한 취미로 보지 않고, 학업 및 직업 역량의 기초로 간주한다는 점입니다. 초등학교에서는 ‘Lesezeit(읽기 시간)’이란 프로그램이 정규수업에 포함되어 있고, 이 시간 동안 학생들은 조용히 책을 읽거나 독서 토론을 합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문학작품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감상하는 활동이 평가 항목에 포함되며, 독서 보고서나 서평 작성이 필수 과제로 제시됩니다.

또한 독일은 ‘책 읽는 나라’를 국가 정체성의 일부로 삼고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매년 열리는 ‘독일 독서의 날(Tag des Vorlesens)’에는 수천 개의 기관과 개인이 참여하여 낭독 행사, 저자와의 만남, 독서 워크숍 등을 진행합니다. 이 날은 독서를 ‘개인의 활동’이 아닌 ‘사회적 연대’로 연결시키는 상징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독서 인프라: 접근성과 다양성을 갖춘 독일의 시스템

독일은 9,000개가 넘는 공공도서관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도서관은 단순한 책 대출 공간을 넘어 지역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각 도서관은 연령, 언어, 취향별로 다양한 장르의 책을 보유하고 있으며, 디지털화 흐름에 발맞춰 전자책과 오디오북 서비스도 제공 중입니다.

‘Onleihe’는 독일에서 운영되는 대표적인 디지털 도서 대출 시스템으로, 도서관 회원이라면 누구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통해 수천 권의 전자책을 언제 어디서든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팬데믹 이후 이용률이 크게 증가하였고, 현재는 독일인의 40% 이상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공도서관은 또한 문화활동의 허브이기도 합니다. 저자 강연, 영화 상영, 북클럽, 어린이 그림책 수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무료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운영됩니다. 예를 들어 베를린 중앙도서관에서는 매주 ‘다국어 동화 읽기’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이민자 가정의 자녀들이 독서에 쉽게 접근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는 독서 인프라가 단순히 정보 제공을 넘어 사회 통합과 문화 다양성 증진에도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더불어 독일의 서점문화 또한 독서환경 조성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독일은 '고정서적가제도(Buchpreisbindung)'를 시행하여 출판사에서 책의 가격을 정하면, 전국의 모든 서점에서 동일한 가격으로 판매하도록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소규모 동네서점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고, 책을 문화재로 보호하는 역할도 합니다.

결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독일의 독서정책은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사회를 넘어서, 국가의 지식 기반과 시민의 문화적 역량을 함께 성장시키는 구조적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독서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교육에서 시작해 문화로 확장되며, 지역사회와의 연계, 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전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 학교에서의 정기적인 독서 시간 제도화, 공공도서관의 기능 확대, 디지털 콘텐츠 접근성 강화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단순한 독서 장려를 넘어, 책을 매개로 한 문화 소통과 사회 통합의 장으로 독서를 바라보는 시각 전환이 요구됩니다.

독일처럼 책을 단순한 개인적 취미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성장 기반으로 인식하는 문화가 형성된다면, 독서는 우리 사회에 더 깊이 스며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