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루엘라(Cruella, 2021)’는 디즈니 빌런 캐릭터의 탄생기를 다룬 작품이지만, 동시에 두 명의 강렬한 여성 캐릭터가 펼치는 권력 경쟁, 창조성 대결, 세대 간의 충돌이라는 서사도 함께 담고 있다. 바론과 크루엘라의 관계는 단순한 적대가 아닌, 여성 간 권력 구조와 계승의 메타포로 작용한다. 이번 글에서는 이들의 대립과 서사를 통해 현대 여성 서사의 구조를 탐색해본다.
바론과 크루엘라, 두 여성의 대립
영화에서 바론은 패션계를 주름잡는 절대 권력자로 묘사된다. 그녀는 무자비하고 완벽주의적이며, 자신의 창조물에 대해 철저히 소유권을 주장한다. 반면 크루엘라는 처음에는 조용하고 소심한 ‘에스텔라’로 등장하지만, 점차 내면의 야망과 재능을 표출하며 바론의 대항마로 성장한다. 이 둘은 단순한 세대 차이를 넘어서, 기성 권력과 신진 창조자, 보수와 혁신이라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를 형성한다. 그러나 단순한 권력 다툼으로 보기엔 이들의 관계는 훨씬 더 복잡하다. 크루엘라는 바론을 모방하며 배운다. 바론의 기술, 디자인, 카리스마는 크루엘라의 성장 과정에서 ‘선생’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배움은 곧 도전으로 바뀌고, 모방은 창조로 전환된다. 크루엘라는 바론의 틀 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쇼’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패션쇼가 아니라 거리에서, 무대 밖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는 단순한 패션 대결이 아니라 권력 자체를 전복하는 행위로 해석된다. 이 장면들은 ‘크루엘라’가 단지 개성 있는 악당이 아니라, 기존 여성 권력에 도전하는 새로운 여성상이라는 상징으로 기능하게 만든다. 바론은 기득권, 크루엘라는 반란의 상징. 이 둘의 대립은 결국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서사로 이어진다.
창조자 vs 모방자, 권력의 상징
바론은 완벽한 장인형 캐릭터다. 그녀는 디자인의 기술적 완성도에 집착하며,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신성시한다. 그녀에게 창조란 곧 통제다. 창조물을 완벽하게 만들고, 그것을 영원히 자신의 소유로 유지하려 한다. 이는 패션 산업 속 창작과 권력의 절묘한 결합을 보여준다. 창조는 곧 권력이며, 권력은 곧 독점적 소유다. 반면, 크루엘라는 이러한 구조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녀는 처음엔 모방자였지만, 점차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간다. 그녀는 기존의 무대 밖에서 새로운 시각 언어를 만들어내는 창조자로 변모한다. 쇼윈도 앞을 무대로 삼고, 쓰레기통을 드레스로 재해석하며, 고정된 ‘패션’의 정의를 해체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크루엘라가 바론의 이벤트마다 등장해 상징적인 ‘방해’를 연출하는 장면들이다. 이는 단지 장난이 아니라, ‘이제 창조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는 선언이다. 크루엘라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결코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비정통적 방식으로 시스템 자체를 흔들기 시작한다. 이러한 방식은 현대 여성 창작자들이 겪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여성들은 종종 ‘기존의 틀’ 안에서 창작의 자유를 제한당하며, 인정받기 위해 기존 권력자의 방식에 순응해야 한다. 하지만 크루엘라는 그 구조를 거부한다. 그녀는 모방자에서 창조자로, 소비자에서 주체로 전환되며, 스스로를 ‘브랜드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는 현대 창작자의 자립성과 독립성을 상징하는 매우 강렬한 서사다.
여성 세계 속 또 다른 유리천장
‘크루엘라’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 작품이 ‘여성 대 남성’의 전통적 대결 구도가 아니라, 여성 내부의 권력 충돌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바론과 크루엘라는 모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성이다. 하지만 이 세계 안에서는 단 하나의 여왕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식의 구조가 존재한다. 이 구조는 ‘여성의 연대’보다는 ‘여성 간 경쟁’을 더욱 조명하게 만든다. 바론은 다른 여성들을 돕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여성을 철저히 짓밟는다. 이는 현실 사회에서 여성 리더들이 종종 겪는 ‘표면적 권력은 가졌지만, 구조 속에서 고립된 존재’라는 문제를 떠오르게 한다. 크루엘라 역시 바론을 밀어내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폭력성과 전략을 사용한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묻는다. “과연 여성은 권력을 가질 수 있는가, 아니면 남성 중심 구조 속의 또 다른 대체물로 소비되는가?” 이 질문은 단지 극중 갈등에만 머물지 않는다. ‘크루엘라’는 여성의 창조성과 욕망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긴장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이 연대 대신 경쟁을, 교류 대신 배제를 선택하게 만드는 시스템의 문제를 건드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루엘라는 마지막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구조를 전복한다. 바론의 성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름으로 ‘크루엘라’라는 브랜드를 세우는 선택은, 단순한 승리가 아닌 기존 구조 자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는 선언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권력의 재정의다.
결론: 여성 권력은 경쟁이 아닌 재구성의 결과다
‘크루엘라’는 단순한 빌런 탄생기가 아니다. 이 작품은 여성 캐릭터 간의 권력 구조, 창조와 모방, 계승과 해체를 치열하게 탐색한다. 바론과 크루엘라의 대립은 ‘여성도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단순한 메시지를 넘어서, 어떻게 권력을 만들고, 어떻게 구조를 바꿀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여성 권력은 경쟁이 아닌, 새로운 규칙과 정체성을 스스로 정의하는 창조적 행위의 결과라는 것을 ‘크루엘라’는 강렬하게 말해준다.